사람구실 못하는 의지박약
요즘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이 유행병 처럼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울산도 강타할 것 같습니다.
과도한 채무에 허덕이는 채무자를 구제하여 경제적 재기와 갱생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범죄와 계층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자살과 소외와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법원이 사회의 의사로서 채무불이행에 앞장 서고 있습니다.
뭔가 맞는 말인것 같은데 불편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본직이 사법접근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면, 개인회생을 신청했는데 사건번호를 알지 못한다거나 인가결정이 났다고 연락은 받았는데 변제금 납입을 연체해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파산선고를 받았는데 면책여부를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주로 서울소재 법무법인이나 변호사, 법무사를 통해 사건을 진행했다는 유형입니다.
울산에도 변호사와 법무사가 많은데 왜 굳이 서울에 맡겼느냐고 물으면 광고를 통해 연결되었다는 답변입니다.
무엇보다 채무자 본인이 직접 서류를 구비할 필요 없이 모든 서류를 대행해 준다는 편리함 때문인데 오래된 습벽이고, 또다른 채무불이행의 연습입니다. 그리고 채무초과 상태를 자초할 만한 안일하고 나태한 태도입니다.
심지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5년 주기로 회생을 할 수 있으니 가능한 대출은 받을 수 있는 만큼 다 받아 챙기겠다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기본이고, 대포통장, 대포폰, 대포차로 신용세탁을 거쳐 담이 커지면 신분세탁까지 하고 잠적함으로써 많은 악덕채권자들을 울립니다.
문제는 이 마약과도 같은 채무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채무자의 가족들입니다.
80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가 깊은 탄식의 한숨을 쏟아낸 것도 이 같은 고질적인 채무의 덫에 걸린 아들 얘기입니다. 아들은 50이 넘었으나 결혼도 하지 못하고 평생을 놀면서 사람구실을 못하는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이고, 억 단위가 넘는 채무때문에 신용불량자라서 아무것도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의하는 것은 그 할머니가 명의를 제공한 당구장에서 푼돈을 벌면서 먹고자고 하는데 개인회생을 신청했을 때 가능하겠는지 여부와 총 채무액에서 몇 프로가 탕감되는 지였습니다.
대부분 의문사항은 대동소이합니다. 얼마를 갚을 것인지는 관심이 없고 얼마를 탕감받을 것인지만 관심사입니다.
그 할머니께 왜 아들이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게 되었는지를 물었고, 성실히 변제계획안을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를 타진해 보았습니다. 머뭇거리는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보니, 그 아들은 개인회생을 할 의지도, 의사도 없어 보였습니다.
오직 할머니가 마음이 급해서 생을 마감하기 전 사람구실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평생의 한일 뿐이었습니다.
개인회생은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고 그 수입에서 최저생계비를 뺀 나머지 가용소득으로 3년이나 5년으로 정한 소정의 변제기간 내에 변제될 총액을 뺀 나머지가 면책되는 것을 기본으로, 희생되는 채권자들과의 법익균형을 고려하여 채권자집회와 이의기간을 거쳐 최종 월변제액과 변제계획안이 인가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무엇보다 그 고통스러운 변제계획안을 수행할 자신이 있겠는가는 오직 채무자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내심으로 자신의 의지를 검열하는 것 같았습니다. 굴 속에서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으로 버팀으로써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신화도 지루한 얘기였습니다.
상황을 알아차린 후에는 손발이 부러져 제손으로 밥숟갈 하나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 의지박약자는 할머니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바른말이 제도의 취지에 붙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놀라지 않았고 마른 한숨과 함께 격정을 쏟아 냈습니다. 아들이 젊었을 때 객지나가 고생할 것을 차마 볼수 없었던 나머지 품에 끼고 살면서 매번 용돈에, 술값에 사고치면 대신 물어주고 대신 갚아주기를 한평생이라 이젠 그 응석받이를 그만 둘 때가 되었음을 자각한 것입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또한 정상적으로 채무를 이행하는 다수의 성실한 채무자들만 바보가 되는 빚 권하는 사회를 조장한 상습범인 아들은 물론 이를 방조한 할머니께도, 들러리를 선 법원에게도 고운말이 나갈리 만무합니다.
빚은 대신 갚아 줘선 안되는 것이며, 갚을 자신이 있는 돈만 빌리는 것입니다. 못 갚으면 망해야 하고 도태되어야 하는 것이 자유주의이고 시장경제원리입니다. 자비와 구제는 옵션입니다.
아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애잔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들이 울며 매달릴 때 손을 뿌리쳤어야 했습니다. 넘어져도 일으켜 세워주지 말아야 했습니다. 혼자 일어서도록 그대로 둬야 했고, 울다 숨이 넘어가도 그대로 둬야 했습니다.
며느리가 도망을 가도,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아도 혼자 감당하도록 내버려 뒀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얼마나 슬플까를 살피지 말고 스스로 극복하도록 관망했어야 했습니다. 결핍에 상응하는 보상중추가 결핍 없이도 보상되는 잘못된 신호로 인해 망가지게 되면 생존경쟁에서 낙오되는 미숙아로 성장하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 보십시오. 우아한 황새도 고고한 학도, 먹이를 물어다 둥지의 새끼들 입에 넣어 주면서도 그들은 매서운 눈으로 새끼들의 상태를 살핍니다. 그리고 가장 크게 입을 벌리는 새끼에게만 먹이를 주고 조금이라도 입을 덜 크게 벌리거나 또는 겁도없이 돌아 앉아있거나, 심지어 졸거나 하는 새끼는 긴 부리로 좃아서 둥지 밖으로 찍어 냅니다. 그리고 여러 조각으로 찢어서 먹어 치웁니다. 사체가 부패함으로써 그 냄새를 맡고 천적이 음습할 것을 대비한 것입니다.
뱀이 습격하면 죽음을 불사하고 알을 지켰던 그 어미이지만, 생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거나 홀로 먹이활동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는 새끼는 도태시킴으로써 나머지 새끼들에게 경각심과 적자생존의 냉엄한 현실을 교육시킵니다. 그리고 그 어미새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 않으며 일말의 자비도, 동정심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어미새의 무표정한 눈은 짐승만도 못한 우리 현실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울산지방법원은 국민의 사법접근성 강화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변호사회, 법무사회 등 법률 관련 외부기관 및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는 전문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법률상담서비스를 사법접근센터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합니다. 울산지방법원 종합민원실 사법접근센터 법률상담관 이성진법무사(월-금 10:00-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