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반환 후의 보증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가 임대인이라며 임차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문의했습니다.
전세금을 내 주고 나서 임대준 아파트를 찾아가서 보니, 베란다 다용도실 내 벽체가 새까맣게 곰팡이로 그을려 있고, 나무마루 일부분이 긁히고 눌려 광택이 마모되는 등 마루 일부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정작 보증금을 받아 챙기고 난 임차인은 이제 볼장 다 봤다는 식으로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기 전 임차인은 내용증명을 보내와 기간만료 즉일 전세금 전액반환을 압박했고 지체할 경우 임차권등기명령, 보증금반환 소송 등 법적절차에 착수할 것이며, 그 소요비용도 전부 청구할 것이니 만만의 준비를 하라는 등 임차인으로서의 권리는 기분나쁠 정도로 무섭게 다그치면서도 의무는 외면한 것이 괘씸하다는 것입니다.
임대차의 보증금은 「민법」에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유상·쌍무계약의 특성상 등가관계의 유지와 채무이행의 견제장치로 자연스럽게 수반된 것으로서 임대차보호법에서 그 반환의 확보를 위해 간접적으로 그 실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5조). 법적 성질로는, 정지조건부 반환채무를 수반하는 금전소유권의 이전으로 이해합니다(곽윤직 채권각론 제6판 박영사 2003, 221면; 지원림 민법강의 제14판 홍문사 2016, 1446면).
판례도, '부동산 임대차에 있어서 수수된 보증금은 차임채무, 목적물의 멸실·훼손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 등 임대차에 따른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것으로서 그 피담보채무 상당액은 임대차관계의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되는 것(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4다56554 판결, 대법원 2016. 7. 27. 선고 2015다230020 판결)' 이라고 하여 일종의 사적담보로 기능합니다.
그리고 차임 없는 채권적 전세(주택임대차보호법 제12조,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7조 ‘미등기 전세’)에 있어서 전세금도 위와 같은 보증금으로서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다만, 임대차는 임차목적물의 사용·수익에 대응하는 차임을 목적으로 한 유상계약이므로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합니다(민법 제623조). 차임을 받는 대신 상품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입니다.
내담자는 차임 없는 전세라고 즉시이의 했지만, 전세권등기를 하지 않은 이상 채권적 전세도 대동소이합니다. 전세금의 금융이익이 차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채권적 전세는 임대차와 이자부 소비대차가 결합되어 있는 혼합계약으로 임대차를 하면서 이자와 차임을 상계하는 것이라는 것에, 대법원 1990. 8. 28. 선고 90다카10343 판결). 전세권은 이 금융기능이 본질인 점에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전세제도는 목적물의 임대차와 전세금의 이자부 소비대차가 결합한 법기술적 제도로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에, 김형배 외2인 민법학강의 제8판 신조사 2009, 675면. 차임 또는 지료와 전세금의 이자는 상계된다는 것에, 곽윤직 물권법 제7판 박영사 2003, 256면).
물론 임차인에게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가 있습니다. 「민법」 제654조는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는 제615조를 준용하고 있고, 특정물의 인도가 채권의 목적인 때에는 채무자는 그 물건을 인도하기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하여야 한다(민법 제374조)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판례도, "임차인은 임차목적물을 명도할 때까지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이를 보존할 의무가 있어,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임대목적물이 멸실, 훼손된 경우에는 그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채무가 발생하며, 임대목적물이 멸실, 훼손된 경우 임차인이 그 책임을 면하려면 그 임차건물의 보존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1. 10. 25. 선고 91다22605, 22612(반소) 판결)."라고 하여 임차인에게 청구의 염결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어차피 임차인이 교체되는 시기에 임대목적물의 점검이나 정기적 수선은 부담해야 할 사업비용이고, 중대한 훼손이 아닌한 곰팡이 번식이나 사소한 생활기스는 유지관리 범위 내 매몰비용으로 생각해도 될 만한 것들이어서 이를 소송으로 다투기에는 규모에 맞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설령 임차인이 환기를 소홀히 한 탓에 원인이 있더라도 건물 외벽의 실내 온도 차에 따른 불가피한 면이 있고, 임차인의 부주의로 인한 마루바닥 마찰 훼손도 이사와 생활상 부수된 생활반응으로 선해할 수도 있으므로 좀 너그럽게 봐 넘겨주면 안되겠느냐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래도 임차인은 사회적 약자이니 좀 더 나은 임대인이 베풀고 사시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내담자는 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임차인이 오히려 사회적 강자가 되었고, 제도적 비호를 받으며 하는 소행이 괘씸하다며 얹힌 마음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본직도 같은 처지임을 밝히며, "저도 임대차를 놔보면, 보증금에서 깔까봐 보증금 뜻도 모르면서 조금이라도 손대면 소송하겠다고 하면서 난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그럴까요, 약자니까 그런 겁니다."
내담자는 처음에는 동의하지 못한 인상이더니, 소송을 하더라도 전망이 밝지 않고, 설령 주장이 받아 들여지더라도 보잘 것 없는 조잡한 결과 밖에 안될 것이고 그 소송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고 마음의 병만 얻을 것이니, 차라리 그럴 바에야 '집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베풀고 산다, 내가 좀 더 낫지 않겠나' 라는 생각으로 품 넓게 이해하고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면 복 받고 산다고 했습니다.
내담자는 등치 값을 하는 사람인지라, 여기 오길 잘했고 상담을 받고 나니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며, 지난 며칠 얄미운 임차인에게 어떻게 되 갚아 줄까 스트레스와 불만으로 가득차 소화도 안되고 잠도 못잤는데 이제 마음이 편해졌다며 좋은 상담 받고 간다는 인사와 함께 "법무사님 잘생기셨어요" 라며 엄지척을 보이며 문을 나섰습니다.
다행이 내담자가 오픈마인드로 곡해없이 잘 받아들인 탓에 원만히 마무리 되었지만,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법리는 엄격하므로 문제를 삼는다면 분명 문제가 되는 사안이었습니다.
울산지방법원은 국민의 사법접근성 강화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변호사회, 법무사회 등 법률 관련 외부기관 및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는 전문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법률상담서비스를 사법접근센터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합니다. 울산지방법원 종합민원실 사법접근센터 법률상담관 이성진법무사(월-금 10:00-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