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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법

고령채권

by 법나루 2024. 6. 12.

 

묵은 채권의 승인과 추인

 
 36년생이라고 밝힌 고령의 신사가 상담을 청하며 꺼내 놓은 서류뭉치는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너덜너덜 헤진 다발 여러 개, 각별로 의미가 다른 묶음별 표지를 붙여 상징적으로 부여한 기호와 번호를 통해 명석한 두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덜덜덜 크게 떨리는 손으로 연신 침을 발라가며 서류를 쉬 없이 뒤적인 탓에 온통 서류 끝 가장자리는 누렇게 변색되어 발효되고 있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이 서류에 적힌 돈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대강의 서류를 살펴보니 확인서, 각서, 확약서, 계약서, 동의서 등으로서 내담자는 2014년경부터 시행사 대표와 주택재개발사업 시행업무를 동업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내담자는 토지 원주민에 대한 지주 인정작업을 도맡아 했고 사업추진 비용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고 금전도 5,000만 원 대여한 것 같은데 고율의 약정이자와 용역비에 대한 지연이자까지 더해 수차 확인날인을 통해 현재 1억5,000만 원 정도로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행사 대표 나이가 76년생이고 보면 마치 신임 소대장을 보좌해 온 중대 선임원사와 같은 구도 같기도 하고 고문 같기도 한데, 우려되는 점은 그 대표가 지금이라도 내담자가 떨리는 손 글씨로 밤새 적은 금전이력과 최종 청구금액을 확인받고자 하는 구구한 서류에 얼마든지 도장을 잘 찍어 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문학작품을 연상케 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공증을 받아달라고 하시지 늘 같은 내용의 반복적인 의사확인 또는 의지확인만 한들 무슨 소용이냐고 물었더니 공증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안 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작성 받은 서류를 근거로 소송을 하시라고 하니, 먼저 변호사를 구할 돈이 없다는 난제가 발목을 잡는데다가 이런 저런 문제 때문에 감정적으로 하길 원치 않는답니다.
 직관으로 보건대, 도급채권의 소멸시효는 지났고(민법 제163조 제3호), 승인이라도 강행규정에 위반되는 무효인 법률행위에 대한 것이라면 효력이 없고(민법 제139조), 무자격 무등록 부동산중개업 중개수수료 지급약정도 무효로 번복할 가능성이 많고(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다75119 판결), 투자금의 사업위험에 대한 공동부담의 항변과(민법 제704조, 제711조), 「이자제한법」 위반의 고리약정 무효(이자제한법 제2조 제3항, 제8조) 등 다툼의 여지가 많아 보였습니다.

 내담자도 이런 여러 가지 쟁점을 의식한 듯 연거푸 원인세탁을 위한 확인서, 확약서, 각서 등을 반복해서 받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에 있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사자 스스로 확신이 없다는 것으로서 소구할 수 없는 자연채무에 불과함을 이제 받아 들여야 할 때기 되었음을 막연하게 나마 알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령의 내담자들 대부분 어눌해 보여도 이해타산에는 명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 길은 멀고 해는 떨어지고, 76년생 신임 소대장은 나이든 선임원사의 기력이 소진할 때까지 또는 연명이 다할 때까지 살살 달래며 시간을 벌고 있는 듯합니다. 이래서 채무의 연속성을 위해 상속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담자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무작정 소송을 권하기도 난처했습니다.

 귀는 고함을 치지 않으면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고 눈도 앞이 흐릿해 무슨 글씨인지 무슨 도장인지 식별하는데 한참 들여다 봐야할 정도로 기력을 다해 고도의 정신과 집중을 요하는 소송행위에 나서기 어려울 듯 했습니다.
 대리인이 나선다 해도 소송행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돈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에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울산지방법원은 국민의 사법접근성 강화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변호사회, 법무사회 등 법률 관련 외부기관 및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는 전문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법률상담서비스를 사법접근센터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합니다. 울산지방법원 종합민원실 사법접근센터 법률상담관 이성진법무사(월-금 10:0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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