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값 해결을 위한 개인회생신청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상담실을 방문했습니다.
상담요지는, 아들의 개인회생 자격이 되는지와 월 변제액은 얼마가 될 것인지, 변제기간은 몇 년이 될 것인지 입니다. 결국 재판결과를 문의하는 것이어서 무당에게 물어봐야 할 듯한 내용이었지만 내색없이 상담을 받았습니다.
먼저 연령과 직업, 총 채무액이 얼마인지를 물었습니다. 29세 부정기 일용직이고, 카드값 2,000만 원이라고 합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611조 제5항에서는 '변제계획에서 정하는 변제기간은 변제개시일부터 3년을 초과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제614조제1항제4호(변제계획의 인가결정일을 기준일로 하여 평가한 개인회생채권에 대한 총변제액이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에 배당받을 총액보다 적지 아니할 것. 다만, 채권자가 동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변제개시일부터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변제기간을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이 변제기간 동안 회생계획을 수행할 정기적 수입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내담자의 기준으로 보면, 인력시장에서 일용노동으로 버는 월 평균 수입이 200만 원 상당이라고 하므로, 1인가구 2024년 중위소득 2,228,445원의 60% 상당의 기본생계비 1,227,067원을 뺀 나머지 가용소득 772,933원씩 3년(36개월)을 변제하면 27,825,588원이고, 원금 2,000만 원을 넘게 되므로 이자까지 완제할 수 있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고 안내했습니다. 보통 이자는 당연 논외로 하고 원금에서 몇 프로를 변제하느냐가 대부분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채무를 완제하겠다는데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는 과도한 채무로 인한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부터의 낙오와 극단적 선택 등 사회적 비용 증가를 방지하고자 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므로, 그 주된 취지인 긴급성의 측면에서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내담자 아들은 카드사의 일시변제 요구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분할변제 목적으로 회생신청을 하겠다는 것인데, 편의성에 경도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멀미가 날 정도로 복잡하고 많은 구비서류를 안내했습니다. 이 서류를, 특히 부채증명서는 채권자들에게 요구할 경우 거부되기가 십상이므로 법무사나 부채증명서 발급대행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자체가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회생계획을 완수할 의지부족 임을 지적했습니다. 내담자는 뜨끔하는 눈치였습니다.
위 법 제660조 제1항에서는, '제29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조회를 받은 공공기관ㆍ금융기관ㆍ단체 등의 장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의 자료를 제출한 경우 그 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시행규칙 제82조 제1항에서, '채무자는 개인회생채권자목록의 작성 및 수정에 참고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개인회생채권자에게 개인회생채권의 존부 및 액수, 담보채권액 및 피담보재산의 가액 평가, 담보부족전망액에 관한 자료의 송부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고, 제2항에서 '개인회생채권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자료송부청구가 있는 경우에는 신속하게 이에 응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자료확보는 법률에 의해 관철할 수 있지만 별도변제, 담보요구 등 회유와 협박을 당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망설여지거나 두려워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이 서류도 준비하기 싫어서 법무사에게 맡긴다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수수료 50만 원을 날리는 것이고, 발품 팔아 직접 성실하게 서류를 준비하는 태도 자체가 향후 변제계획안을 수행할 성실성을 담보하는 것이므로 가급적이면 채권자들(대부업체, 카드사)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핀잔을 듣더라도 귓등으로 넘기고 당해주는 것이 변제계획 수행의 첫 걸음이고 수행완수 후 갱생의 삶을 위한 각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용소득(가능한 월 변제액) 결정에 있어 추가적 보정권고와 보정명령에 따라 밝혀지는 채무발생 경위와 이력에 따라 수차 조정을 거치게 될 것인데, 그 지난하고도 곤란한 신상에 관한 집요한 추궁과 세밀한 자금추적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채권자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없으며 채무자의 변제의사와 변제의지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용처에 따라 해명을 요구받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월 변제액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내담자 아들이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어려서 부모가 일찍 이혼하고 경제적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한 것도 변제계획안 인용사유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보아하니, 함께 온 아버지가 내담자 아들의 회생신청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고 향후 변제계획도 대신 수행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즉 불쌍한 내새끼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바로 역정이 났습니다. 심사가 뒤틀려 더 이상 정상적인 상담이 어려웠습니다.
본직은 내담자 아들을 보며, 나이가 29살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이고 사지 멀정한데 못 할게 무엇이냐고, 왜 벌써부터 회생에 기웃거리느냐고 나무랐습니다. 당장에 회생신청을 하면 소액으로 장기간 나눠 변제할 수 있고 강제집행도 막을 수 있어 여유롭고 안락한 생활에는 약간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회생이력은 평생 발목을 잡을 것이고, 고작 2,000만 원이라는 소액으로 일생을 망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습니다.
다소 거슬리는 듯 힐끗 내 눈치를 보는 듯 했습니다. 상담태도가 불량해 보여 조금 더 언성을 높였습니다.
'만만한게 부모 원망인가? 아님 습관성 남탓인가', '카드 값은 어쨌든 본인이 쓴 거 아닌가, 거기에 왜 부모를 갖다 붙이나', '자기가 저지른 일, 자기 스스로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무슨 스물을 넘은 성인이 왜 부모 탓을 하는가'와 같은 잔소리를 좀 했습니다.
역시나 듣기 싫어 하는 눈치입니다. 어쨌든 금수저를 물려줄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것 부터 불운이고, 불행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이리저리 꼬인 인생과 이러저러한 여건들로 인해 인생 초반부터 기분이 잡쳤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평 불만이 가득한 좌절하는 청년에게,
어느덧 중년이 된 그 오기 창창하던 상륙군 해병은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어요, 부모 도움없이 고아처럼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20대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의 명운이 갈립니다. 20대 때는 누구나 가진 것은 없지만, 그렇치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은 최고의 황금기입니다. 30년 전, 그때 조공 일당이 65,000원 이었으니까 지금은 두배라고 보면, 아무 기술도 없던 26살 청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도비, 취부, 사상 조공과 같은 위험하고 험한 일 뿐이었지만 그것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감사하다 생각하고, 저녁 6시 모두 옷 갈아입고 퇴근하는 사람들 뒤로 남아 1,5공수로 더 달아준다는 3시간 야간작업, 2.0공수로 더 달아준다는 휴일작업을 마다 않고, 왜냐면 집에 가봐야 밥먹고 TV보는 것 밖에 더 있겠냐 이거죠,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이 질곡에서 벗어날 유일한 희망은 공부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집에 돌아와 새벽닭이 울때까지 책상 앞에 꾸벅꾸벅 졸면서 뺨을 때려가며 시퍼런 식칼을 꼽아 놓고 공부한거 아녀요, 그래서 남들보다 뒤쳐진 인생 따라 잡느라 한숨도 나고 눈물도 났지만 그렇치만 부모 원망 안했습니다. 소용도 없고 그러는 시간도 아까워 독을 채우며 공부한 끝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와 방송통신대학교를 거쳐 법무사 시험 봐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겁니다. 여기 사회적 지위를 어느정도 가지신 분들 모두 힘든 과정을 다 겪으신 분들입니다. 무엇하나 저절로 되는게 어딨답니까"
내담자 아버지는 탄성과 함께 놀랜 표정으로 연거푸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담자 아들도 꾸부정하고 삐닥했던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맨붕이 온듯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심각한 긴장감과 당혹감이 돌았습니다.
"한번 해 보세요! 엑스엑스! 한번 사는 인생 제대로 한번 살아보겠다면은, 정신 똑 바로 차리고! 마, 죽을 각오로! 해병캠프 왔다 치고! 한번 몇 달만 철야작업, 고소작업 한번 해 보세요, 2,000만 원? 두달이면 갚습니다, 30년 전보다 임금이 3배가 올랐고 3D 업종은 동남아 외국인들로 채워져 내국인 노동자들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요즘, 금방 일어설 수 있는 일이 사실은 노가답니다, 화력발전소나 탄광에 가보세요, 진폐증? 담배 피는 것보다 덜 해롭습니다."
"소중한 인생, 평생 제도권의 혜택에 의존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 내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 것인가, 20대에 결정됩니다."
"호랑이한테 열두번을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고 했어요, 왜 못합니까, 안 할라 카니까 못하는 거죠"
"수급자? 그게 그토록 바라는 목표입니까? 이웃의 주머니를 털고 사회 공공재원을 축내는 일인데 벌써부터? 회생이나 수급자나 다를게 뭐가 있습니까, 타인의 노력이나 양보에 기생해서 살아가겠다는 면에서는 같은 거 아닙니까, 구제받는다는 것은 기본권을 주장하기 전에 미안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어요, 어떻게든 혼자 해 볼려고 아둥바둥 발버둥을 치고 죽을 힘을 다해 버둥거릴 때 그제야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되는 것이고, 귀신도, 여우도 돌보는 것이지, 처음부터 편한 방법만 찾으려고 하면 누가 도와 주겠어요? 그리 하면 되는데, 그리고 도움받는 것도 습관이 되면 평생 거지꼴을 못 면하게 됩니다."
내담자 아들은 90도로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상담실 문을 나섰습니다.
"두고보자, 내 너 반드시 복수하러 온다, 오늘 당한 무안을 반드시 갚아 줄 날이 있으리라, 앙심을 품고, 원한을 품으라, 그리고 그 칼을 품고 다시 오라, 그 때 다시 상대해 주마, 남자라면"
울산지방법원 사법접근센터 민원상담관 이성진법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