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재물의 반전된 사전횡령
전화상담으로 간략히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적용법조와 대비책을 알려드린 것만으로 다소 부족한 듯 보여 다시 사건을 재구성해 법리를 요약해 드립니다.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즉, 90대 고령의 숙환으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부친의 발인이 끝나자마자, 9년가량 요양간호를 해 온 막내여동생에게 셋째오빠가 형사고소 하겠다고 통보해 왔다는 것이 상담을 청한 사태의 발단이고, 부친이 돌아가시기 3년여 전 부친께서 가지고 계신 예금은 먼저 작고하신 모친의 예금이 상속되어 함께 담긴 것으로서 이를 요양간호 한다는 막내여동생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할 수 있는 부친의 명의로 관리하게 할 수 없으니 자신에게 넘기라는 셋째오빠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그 무렵 부친께서 예금통장과 카드를 모두 셋째오빠에게 넘겼는데,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통장 분실신고를 하고 통장을 재발급 받아 예금을 모두 인출한 것을 후일 알게 된 셋째오빠가 고령의 예금주를 대리한 막내여동생의 예금절도라는 주장이 사태의 전말입니다.
[1] 통장의 분실신고를 하여 계좌거래를 정지시킨 행위에 대해, 예금통장은 그 자체로 예금채권의 행사자격, 예금액에 대한 증명 등 특수한 기능가치를 가지는 재물(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도9008 판결)로서, 그 재물의 본래의 사용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물론 일시적으로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효용을 해하는 것이므로(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4도13083 판결), 손괴죄를 검토할 수 있으나, 재물의 타인성이 인정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분실신고 당시 예금통장의 소유권은 부친에게 있었고 셋째오빠가 점유하고 있었을 뿐이므로 권리행사방해죄만 검토될 뿐입니다. 그러나 점유의 원인은 상속개시를 정지조건으로 한 상속재산의 일실방지를 위한 보관 내지 관리의 위탁과 같아 보이므로 부친에게 권리행사를 방해한다는 인식과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또한, 손괴한 물건의 소유자가 아닌 막내여동생이 가담한 경우 「형법」 제33조 본문에 따라 처벌될 수는 있으나, 물건의 소유자에게 고의가 없는 등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공동정범이 성립할 여지가 없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4578 판결) 할 것입니다.
[2] 통장을 재발급 받아 금전 인출을 시도한 행위에 대해,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계좌를 이용한 것이어서 애초 예금계좌를 개설한 은행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절취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도8776 판결)고 보아야 합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 일반적으로 그 예금계약서에 예금주로 기재된 예금명의자나 그를 대리한 행위자 및 금융기관의 의사는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보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경험법칙에 합당(대법원 2009. 3. 19. 선고 2008다45828 전원합의체 판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도죄의 객체인 재물은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 소유의 재물이어야 하므로(대법원 1980. 11. 11. 선고 80도131 판결), 공유인 상속재산(민법 제1006조)도 점유하는 타인과 공동소유이면 타인의 소유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상속개시 전이므로 점유자와 소유자가 일치하지 않아 절도죄로 의율하기는 어렵습니다.
[3] 통장과 카드를 넘겨놓고 예금을 전격 인출한 소위에 대해, 배임죄와 같이 신임관계를 배반한다는 비난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횡령죄의 주체는 위탁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대법원 2022. 6. 30. 선고 2017도21286 판결)로서 진정신분범에 해당합니다. 통장과 예금의 점유(보관)는 셋째오빠에게 넘어갔음은 의론이 없으나 소유(처분)까지 넘어간 것인지는 당시 그와 같은 요구를 받게 된 배경과 경위를 살펴 정당성과 상당성도 봐야 합니다.
당시 부친의 의사가 관리권을 넘긴 것인지 처분권을 넘긴 것인지 그 진위는 고인의 생전 거동을 비추어 추단할 수밖에 없는 바,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는 해제할 수 있고(민법 제555조), 유언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는 경우, 유증의 목적물을 파훼한 때 저촉된 부분의 전유언이나 파훼한 부분에 관한 유언은 이를 철회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민법 제1109조, 제1110조) 설령, 당시에는 일시적이나마 관리처분권을 모두 넘긴다는 의사가 있었을지언정 우회수단으로 소유권 회복을 추구한 것으로서 예금을 인출하던 무렵 고인의 인식은 ‘타인이 보관하는 자기재물의 처분’이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친은 횡령죄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바, 막내여동생이 이에 가담하였다 하더라도 공범종속성설(대법원 1970. 3. 10. 선고 69도2492 판결; 대법원 1974. 6. 25. 선고 74도1231 판결; 대법원 1978. 2. 28. 선고 77도3406 판결; 대법원 1981. 11. 24. 선고 81도2422 판결)을 취하는 판례에 의하면 본범과 별도로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 외의 재산범에서 강도죄는 직접성이, 사기죄는 처분행위가, 공갈죄는 외포수단이, 배임죄는 신임관계가, 그리고 장물죄는 본범이 없으므로 본 사안에는 적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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