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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법

파탄주의

by 법나루 2023. 8. 1.

 

황혼이혼의 법익과 실익

 
​ 2023. 7. 31. 75세 어르신의 이혼상담입니다.
 이혼사유를 물어보니 간략하게 ‘도저히 함께 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협의이혼 가능성을 물으니 부인은 이혼의사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혼을 반대하는 이유가 ‘곧 죽을 건데 뭐 하러 하느냐’는 것입니다.

 내담자의 주장사유는 「민법」 제840조 제6호 ‘가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할 것인데, ‘밥을 안 차려주고, 빨래도 자기 것은 자기가 직접 하라’고 하면서 한 건물에서 따로 방을 마련해서 살고 있으면서 남남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주된 취지였습니다. 경제적 생활상태를 물어보니 일생동안 마련한 상가건물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고 있고, 신축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합니다. 재산분할도 이혼의 성부에 달린 것이어서 이혼이 최대 과제가 되었습니다.

 “부인이 남편의 밥을 차려 주어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요?”라고 반문해 보았는데, “늙어서 밥도 못 얻어먹을 바에 갈라서는 게 낫다”는 완고한 입장에 더 이상 부부의 협력의무에 관한 설명은 구차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역정을 다 지나오신 분께 법리로 인생을 가르치려 드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법원이 어르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법원은 이혼사유에 대하여 유책주의를 채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가령, 부부가 더 이상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그 원인과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허용되지 아니한다는 것에, 대법원 1966. 6. 28. 선고 66므9 판결, 대법원 1999. 2. 12. 선고 97므612 판결).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파탄주의를 이혼사유로 채택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협의이혼 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유책배우자라도 상대방에 대한 보상과 설득으로  협의를 통해 이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반면,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현 단계에서 파탄주의를 취하게 되면 유책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결과가 될 위험이 크다는 고민에 따른 것입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이에 따라 당사자 양쪽의 책임 있는 사유로 사실상 혼인파탄에 이른 경우라도 섣불리 파탄주의로 결론 낼 것이 아니라,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책임의 경중을 가려 이혼청구의 인용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가령, 이혼사유를 일으킨 배우자보다 상대방 배우자에게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 배우자는 위 이혼사유를 들어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에, 대법원 1993. 4. 23. 선고 92므1078 판결, 대법원 1994. 5. 27. 선고 94므130 판결).

 다만, 예외적으로 파탄주의와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하여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고, 다만 상대방도 그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데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이 인정된다(대법원 1999. 10. 8. 선고 99므1213 판결,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3므1890 판결, 대법원 2006. 1. 13. 선고 2004므1378 판결).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다만, 그렇다고 우리 법원이 파탄주의를 보충적으로라도 채용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민법 제840조 제6호를 파탄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라는 데, 지원림, 민법강의 14판, 1826면). 여전히 혼인파탄과 유책성에는 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혼인파탄에 있어 유책성은 혼인파탄의 원인이 된 사실에 기초하여 평가할 일이며 혼인관계가 완전히 파탄된 뒤에 있은 일을 가지고 따질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3므1890 판결, 이혼을 구하는 배우자의 유책행위와 혼인파탄과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때, 즉 이미 다른 원인에 의하여 혼인이 파탄되어 있는 경우에는 설혹 원고에게 유책한 행위가 있더라도 그것으로써 이혼청구를 기각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법원 1994. 2. 25. 선고 93므317 판결).

 내담자의 사연으로 돌아와 보면, 고령으로 혼인이 형해화되고 실질적 부부공동생활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경우로서 일상생활의 영위가 독신생활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부부공유재산에 권리가 제한되고 소외됨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면 이혼을 통해 재산을 분할하여 여명을 간섭 없이 자유롭게 향유하는 것이 상호 이익이 된다고 못 볼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신분관계의 변동을 편의적으로 택한다는 것 또한 인륜에 있어 바람직한 것은 아니므로 협의이혼을 통해 원만한 결론에 이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할 것입니다.

 결국 재판상 이혼에 이르게 되더라도 파탄주의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정면으로 주장하기는 힘들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종래 혼인기간이 많이 남고, 재혼가능성이 많은 이들 중심의 혼인제도 운영과 해석에 대해 이 같은 내담자의 사연은 고령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혼인제도의 법익과 그 실익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 깊은 연구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울산지방법원은 국민의 사법접근성 강화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변호사회, 법무사회 등 법률 관련 외부기관 및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는 전문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법률상담서비스를 사법접근센터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합니다. 울산지방법원 종합민원실 사법접근센터 법률상담관 이성진법무사(월-금 10:0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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