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협의의 자녀 운명 결정권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모녀가 상담을 청한 내용은 협의이혼 숙려기간 중 재산분할 합의가 여의치 않아 협의내용을 변경하고자 하는데 가능한지 여부입니다.
부부는 이혼하고, 미성년자녀는 남편이 친권과 양육권을 가지고 부인은 월 3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협의해서 서류를 접수했는데, 숙려기간 중 남편이 자녀를 만날 수 없게 하고 약속했던 재산분할도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성년자녀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부인이 가지고 남편은 월 5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변경하겠다고 해야만 남편으로부터 약속한 재산분할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위자료는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유책사유는 불문에 부치기로 합의된 듯합니다.
나아가 부인 명의로 되어 있는 자동차를 남편이 타고 다니면서 차를 숨겨 놓아 빼앗아 올수도 없으니 사기죄나 횡령죄로 고소할 수 있는지도 문의하셨습니다.
협의이혼이건 재판이혼이건 미성년자녀가 있는 경우 친권자 지정(민법 제909조 제4항, 제5항)과 양육에 관한 사항(민법 제837조 제1항, 제843조)은 이혼의 필수조건이 됩니다. 면접교섭권(민법 제837조의2 제1항)은 양육에 관한 사항에 포함되어 있어 숙려기간 중에는 발효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산분할(민법 제839조의2, 제843조)과 위자료(민법 제806조, 제843조)는 이혼사건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반드시 함께 처리할 필요는 없고, 재산분할은 2년의 제척기간(민법 제839조의2 제3항) 내, 위자료는 3년의 소멸시효(민법 제766조 제1항) 완성 전까지 별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협의이혼은 당사자 간의 합의(의사의 일치)가 수반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별도의 절차에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다투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한 나머지 이혼절차에서 한꺼번에 결제 받고자 하는 요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지렛대로 삼아 금전적 청구권을 실현하고자 하는 소위는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상담에 임하는 모녀는 모두 젊으신 분들이었는데, 주로 모가 나서서 딸과 사위의 이혼에 대한 분통을 터트렸고, 그에 따른 재산추급의 구체적인 방안을 물어왔습니다.
그 와중에 정작 딸은 모의 거친 입담에 동조하다가도 다소 머뭇거리는 것이 숙려기간 제도가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숙려기간은 미성년 자녀를 위한 기간이지 부부간 재산다툼을 하라고 둔 기간이 아닙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미성년자녀를 부부 각자의 유·불리 계산에 태워 그 귀속을 다투는 것은 어른으로서 차마 할 일이 아니며, 적어도 태생을 원하지도 않았던 자녀에 대한 무책임한 소외로서 자녀의 가슴에 깊은 상처만 주게 됩니다. 이 같은 상황의 올바른 인식을 위해 우리가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고, 인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딸보다 먼저 경험했던 모의 애정 어린 인생훈수는 반드시 옳은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모마저 미움에 눈이 가린 나머지 먼 훗날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의 장본인이 안 된다고 못 볼 바도 아니고, 자신의 운명은 오직 자신에게 맡겨져 있고 부부의 운명 역시 부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다. 책임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모는 모의 부부사이에 집중하시고, 딸은 남편과의 부부관계의 갈림길에서 반드시 이 방법만이 최선인가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먼 훗날,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하는 후회는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 후회는 뒤늦게 도착한 이성과 함께 뼈아픈 고통을 선사할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이유는 얼마 전 스스로 선택한 결정의 근거가 합리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애정에 터 잡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밉고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에게 타격을 입혀 굴복을 받아내고 싶은 욕심이 목에까지 차오르지만 그 같은 경멸과 증오의 감정은 남편도 동일한 것이고, 거울을 보고 싸우는 부부를 올려다보는 자녀가 침묵으로 성장하는 그날, 그 남편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이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조망하고 자신 외의 모든 사물과 개체들은 피사체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는 온 우주의 중심임에 본인과 하등의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 날 가슴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 것입니다.
숙려기간에는 여전히 부부이므로 부부공유재산으로 추정되는 물건에 대한 횡령죄는 성립하기 어렵고, 자동차인도명령도 귀속불명재산으로서 처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협의이혼의사확인기일에 남편이 출석할 수 있도록 잘 다독여야 합니다. 미성년자녀에 대한 친권과 양육에 관한 사항도 그때 재고해 볼 여지가 있을 뿐입니다.
이 상태로라면, 섣불리 자녀의 일신상의 문제를 거론하여 감정을 악화시킬 경우 일시적 감정으로 의기투합했던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까지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고, 손익타산과 오직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목적의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협의이혼의사확인기일에 출석하지 않는 방법으로 절차를 공전시킬 가능성만 증폭시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부는 장기간 스트레스상태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재판상 이혼절차로 들어서서 막대한 변호사비용을 지출하고 패가망신 한 후 하나도 남을 것이 없게 된 때 그 때 상처투성이 이혼판결문만 액자에 걸어두고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임이 자명합니다. 정녕, 이혼을 원한다면 남편을 자극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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