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증거능력과 진정성립
한 부부가 억울하고 황당하다며 서류뭉치를 꺼내 놓자마자 거친 항의를 시작했습니다.
원고가 제출한 소장의 주장만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법원이 일방적으로 이행권고결정을 내려 통보했다는 것이고, 이의신청을 했는데 추가로 서증을 보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자소송으로. 송달된 서증은 선명하게 두사람의 도장이 찍힌 차용증이었는데 자신들은 이 차용증을 본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분은 법원이 원고의 일방적 주장에 따라 이미 결론을 내고 자신들에게 그 증거로 차용증을 들이 댔다는데 대해 재판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으머 이미 원고쪽에 기울어진 편파적 선입견을 어떻게 깨뜨릴지에 대해 걱정과 흥분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두분은 한결같이 원고가 누군지 생면부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차용증을 작성한 적도, 도장도 찍은 사실이 없다며 쉬지 않고 번갈아 가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56조 제1항은 피고가 원고의 청구를 다투는 경우에는 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소액사건심판법」 제7조는 위 규정에도 불구하고 바로 변론기일을 정하고 1회의 변론기일로 심리를 마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증거가 명백한 사건은 피고들의 답변을 기다릴 필요 없이 변론기일을 지정하고 결심하면 피고들은 효과적인 증거다툼은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패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피고의 답변 태도는 보통 부인, 부지, 자백 침묵, 항변으로 구분되는데(민사소송규칙 제65조), 원고가 제출한 서증에 대하여는 문서의 진정성립에 관하여 인정, 침묵은 자백간주로 되며 철회할 수 없게되고(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1다5654 판결), 부인, 부지로 답할 경우 문서의 진정성립에 관한 증명책임은 그 문서 제출자에게 돌아갑니다(대법원 1994. 11. 8. 선고 94다31549 판결). 다만 문서의 진정성립을 부인하는 때에는 단순부인은 허용되지 않으며 부인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힌 이유부 부인만 허용합니다(민사소송규칙 제116조). 문서의 진정성립을 부인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아니하고 단순히 부인만 하는 경우라면 이는 변론 전체의 취지(민사소송법 제202조)에 비추어 인정, 침묵으로 간주될 위험이 있습니다.
서증에 관하여는 문서의 진정성립 여부가 판결이유 설시에서 누락할 수 없는 주요사실의 인정 자료에 해당함은 물론(대법원 1993. 5. 11. 선고 92다50973 판결; 대법원 1993. 12. 7. 선고 93다41914 판결) 판결의 근거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진정성립의 증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민사소송법은 법정증거법칙의 일종으로 추정규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즉, 사문서의 진정에 관하여는 증거를 대는 자가 그 성립의 진정을 증명하여야 하지만(민사소송법 제357조), 그 문서 작성자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이 있는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하므로(민사소송법 제358조), 거증자는 작성명의인의 인영(도장의 모양)이 그 사람의 인장에 의한 것임만 증명하면 그 사람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사실상 추정되고, 일단 날인의 진정이 추정되면 그 문서 전체의 진정성립까지도 추정된다는 이른바 2단계 주청을 적용받습니다(대법원 1986. 2. 11. 선고 85다카1009 판결; 대법원 1987. 12. 22. 선고 87다카707 판결).
다만, '인영의 진정성립, 즉 날인행위가 작성 명의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는 추정은 사실상의 추정이므로, 인영의 진정성립을 다투는 자가 반증을 들어 인영의 진정성립, 즉 날인행위가 작성 명의인의 의사에 기한 것임에 관하여 법원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할 수 있는 사정을 입증하면 그 진정성립의 추정은 깨어진다(대법원 1997. 6. 13. 선고 96재다462 판결).' 라고 하므로, 문서거증의 상대방은 인장도용의 항변(대법원 1976. 7. 27. 선고 76다1394 판결), 강박날인의 항변(대법원 1991. 1. 11. 선고 90누6408 판결), 백지보충권의 항변(대법원 1988. 4. 12. 선고 87다카576 판결; 대법원 2000. 6. 9. 선고 99다37009 판결) 등으로 그 거증문서의 진정성립의 추정을 깨뜨려야 합니다. 물론 그 증명책임은 항변자에게 있습니다.
이 사건에 돌아와 보면, 제출된 차용증은 부부 모두 처음 보는 문서이고 원고도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작성명의인의 인영에 있어서는 부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고, 남편은 자신의 것이 맞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부의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유출되어 작성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부의 진술태도와 반응, 안색과 표정을 살피며 각자 주민등록번호와 성명을 백지에 적어 보도록 한 후 차용증의 필적과 대조해 보고는 부부가 말하지 않는 진실과 부부가 함께 말할 수 없는 진실이 무엇인지 직감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차용증의 증거능력을 보면, 차용증에 적힌 채권자의 표시가 지워진채 제출된 점(‘채권자’ 글씨는 ‘채권지'로 나타나고, ‘지’의 ‘l’오른쪽 부분은 매끈하게 가려져 있으나 왼쪽은 가로획 출발점의 흔적이 남아 있음)에 착안하여 보면, 그 자체로 증권적 채권으로 보기 어렵고, 지명채권으로서도 채권자가 지정되어 있지 않아 어느모로 보더라도 채권을 표상하는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증거 탄핵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가령 차용증을 원용할 당사자가 아니고, 채권을 양도받아서 양수금으로 청구하는 것이더라도 지명채권의 양도방식으로서 양도통지(민법 제450조 제1항), 지시채권의 양도방식으로서 배서와 교부(민법 제508조)라는 권리외관이 없고, 무기명채권 및 지명소지인출급채권으로 인정될 만한 유통증권으로 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민법 제523조, 제525조).
그리고 구체적 항변으로는, 먼저 사건의 주채무자인 부인은 오래전 누군가에게 차용증을 적어 준 사실은 있으나 이 사건에 제출된 차용증을 작성한 사실은 없으며 누군가에게 차용증 작성을 위해 도장을 맡긴 적은 있으나 이 사건에 제출된 차용증에 압날한 적은 없다고 진술하므로, 제출된 차용증의 증거능력에 관한 탄핵주장과 당사자 적격의 흠결의 본안전 항변과 소외인과 작성되었다는 차용증에 관한 채무의 실체에 관하여 '이자제한법 제2조 제1항의 최고이자율에 관한 규정' 및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 제5항의 최고이자율 연20%를 초과하는 이자 상당액을 원본에 충당하여(이자제한법 제3조, 대부업법 제8조 제5항) 채무소멸의 항변을, 이 사건 차용증에 보증인으로 입보된 남편은 사실혼 관계인 부인에게 도장을 쓰라고 맡긴 적이 없으며 부인의 채무관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므로, 인장도용의 항변과 민법 제433조 제1항 주채무자의 항변의 원용과 민법 제437조 최고, 검색의 항변권의 행사로 각 청구기각을 구하는 답변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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