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신용의 임대인 훈계
상담을 청하신분은 임대인입니다. 임차인 때문에 소송이 걸렸다며 가지고 온 서류는 채권가압류 결정과 진술최고서입니다.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절차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는 것인지, 보증금에 가압류가 걸린 것을 사유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를 문의하셨습니다.
먼저, 불이익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이익은 없습니다. 다만 불필요한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진술하는 것이 좋습니다. 채권은 특정인 간 권리의무에 관한 상대적 효력을 특정한 재산권으로서 당사자 간 형성된 채권내용을 외부에 공시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임대차계약의 해지 또는 갱신거절사유 해당여부입니다.
가압류의 집행목적물은 보증금반환채권일 뿐 보증금이 아니고,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발생시킨 기본적 계약관계인 임대차계약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임대인의 보증금 우선특권에도 지장을 주지 않으므로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내담자가 가지고 온 서류를 살펴 사실관계를 보니, 임차인은 임대차(전세)보증금 4억 원을 너희은행에서 대출받아 내담자에게 지급했던 것이고, 내담자는 즉일 너희은행에서 요구하는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양도승낙서’에 서명한 상태였습니다. 보증금 전액이 대출금인 때문에 양도담보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이는데, 질권설정(입질)도 채권양도의 방법으로 하므로 결론에서는 동일합니다(민법 제346조).
즉, 가압류의 집행대상인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은 이미 임차인의 손을 떠난 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는 가압류채권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통정오해를 받지 않습니다.
물론, 확정일자 있는 문서의 대조로 후일 가압류 집행대상이 가압류신청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 때 임대인은 비로소 제3채무자 혐의를 벗게 될 것이지만 그렇게 알게 되기까지 가압류채권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기대이익을 누적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가압류채권자로서는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압류를 예상하고 통정 은닉했을 개연성으로 임대인을 대상으로 추심의 소를 제기할 것이고 그 소송절차에서 임대인은 결백을 밝힐수 있다해도 번거롭고도 피곤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는 명백히 자초손해입니다.
결과적으로 불이익은 없다손 치더라도 채권의 상대적 효력에 따른 대외적 공시방법이 없는 제도적 한계상 외부에서 생각할 때는 임차인에게 보증금반환채무를 부담하는 임대인에게 「민사집행법」 제237조 제1항 각호의 사항을 진술하게 하여 집행목적물의 상태와 성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강제할 수단도 마련되어 있습니다(제3항 심문).
그러나 내담자는 이 모든 상황이 불편하고 불쾌합니다. 임차인에게 전화를 걸어 빠른 시일 내 가압류를 정리하라고 훈계했다고 합니다. 왜 내게 이런 법원서류가 송달되게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비즈니스관계가 적서문제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임대인은 임대차목적물을 상품으로 제공하고(민법 제623조), 임차인은 차임을 대가로 지급함으로써(민법 제618조 후단) 당사자들의 등가적 이익은 맞물려 이행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보증금은 본래 임대차의 요소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불신정서에 따라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관행된 것입니다(대법원 2016. 7. 27. 선고 2015다230020 판결). 그리고 그 보증금을 반환받을 장래 임차인의 청구권(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은 양도·입질이 가능한 재산권으로서 거래계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격은 보증금이 ‘임대차관계의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 임대차계약상 발생할 임차인의 채무를 공제하기 위한 것(대법원 1999. 12. 7. 선고 99다50729 판결)’이 주된 기능으로 임차목적물의 반환과 동시이행의 관계(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1241,1242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산되는 견제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임차인의 처분가능한 재산으로서의 보증금반환채권은 본질적으로 임대인의 채권을 우선 공제한 잔여채권이 됩니다. 임대인이 이 보증금으로 금융이익을 얻거나, 그 수단으로 수수하였다 하여도 본질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판례는 보증금의 법적 성질을 ‘정지조건부 반환채무를 수반하는 금전(대법원 1988. 1. 19. 선고 87다카1315 판결)’이라고 하므로, 장래 발생할 보증금반환채권도 민법 제449조 권리양도 일반에 따라 임대인 동의 없이도 양도 가능하고(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2다104366,104373 판결) 임대인에 대한 지명채권 양도의 대항요건만 갖추면 되므로(민법 제450조), 임대차계약상의 권리·의무가 이전되는 ‘계약인수’ 유사의 지위이전 계약인 임차권 양도가 아닌 특정채권의 양도이므로 임차권의 대항력과 결합된 우선변제권까지 함께 이전하지 않는다는 점(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다10276 판결)과, 임대인이 보증금에 대하여 가지는 차임 공제 등 ‘담보적 효력 유사의 우선권(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4다56554 판결)’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므로 임대인에게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습니다. 입질도 마찬가지 입니다(민법 제345조, 제346조, 제349조).
"임차보증금을 피전부채권으로 하여 전부명령이 있을 경우에도 제3채무자인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로서 전부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어서 건물임대차보증금의 반환채권에 대한 전부명령의 효력이 그 송달에 의하여 발생한다고 하여도 위 보증금반환채권은 임대인의 채권이 발생하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임대인의 채권을 공제한 잔액에 관하여서만 전부명령이 유효하다(대법원 1988. 1. 19. 선고 87다카1315 판결)."
따라서 임차인이 가지는 임차인의 재산권이라 할 수 있는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에 압류 또는 가압류가 집행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할 사유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대법원 2020. 5. 28. 선고 2020다202371 판결). 압류나 입질이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기본적 계약관계에 관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대법원 1997. 4. 25. 선고 96다10867 판결; 대법원 2020. 7. 9. 선고 2020다223781 판결).
그런데도 왜 우리나라 임대인들은 임차인의 신용에 과민한 것일까요? 마치 오래전 우리나라 고유의 재산거래 관습으로서 ‘차입(借入), 세입(貰入)’ - 양반이 집 없는 노비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거나 세를 받고 기거하게 한 은사행위 - 의 정서가 서구에서 받아들인 임대차에 스며들어 또는 임대차가 전세에 순치되어 신분질서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요(가령, 그러니까 남의집살이를 못 면한다는 따위)? 마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남귤북지’의 한 폐해로 보입니다.
임차인을 집 없는 서민으로 보기보다 임대인과 임대차목적물에 관하여 유상계약을 체결한 계약 당사자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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