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와 낙태권의 한계
50대 후반 부부가 상담실을 찾은 사연은 20대 초반 철모르는 아들 내외의 이혼 문제였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애가 들어서는 바람에 급하게 혼인신고부터 하고 살았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심하게 싸우고 이혼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며느리가 임신 초기인데 애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는 것이 고민이라고 합니다.
상호 주고 받을 것도 없는 마당에 애 마저 지우고 나면 나중에 서로 청구할 것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 되므로 불씨를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낙태죄가 위헌결정을 받아 폐지되었다고 들었다며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요즘은 갈수록 막장 사연이 많아져 법원 상담도 정신노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는 병든 남편의 기대여명과 재산소진의 등가이익에 따른 안락사 문의를 받았는데, 장래 자녀의 포태기간과 재산손실의 등가이익에 따른 낙태사 문의를 또 접하게 되니 법원 상담창구가 사회 병리현상의 지진계로 반응하는 듯합니다.
낙태는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각호에서 정한 의학적·우생학적 적응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범죄입니다(형법 제269조). 위 적응방식에 의한 예외도 어디까지나 위법성조각사유에 불과하고, 태아를 자연분만기에 앞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살해함으로써 성립(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3도2780 판결)하는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함은 불변의 사실입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른 입법개선 시한 도과로 그 효력을 잃어 무법(공백)상태로 있을 뿐입니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제1항에서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임신 24주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현 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되는 전제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전후를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착상 시부터 이 시기까지) ‘결정가능기간’으로 보고 결정가능기간의 종기 및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의 조합 등에 관하여 입법재량 영역으로 보고, 단순위헌을 선언할 수 없는 한계로 지적했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ㆍ실종ㆍ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9. 4. 11. 2017헌바127 결정에서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다.” 라고 전제한 뒤,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으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하면서 ‘자기낙태죄 조항과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정당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는 명분으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는 것이 위헌의견의 골자입니다.
다만, 위 조항에 대하여(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 각각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되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하였습니다.
민원인 부부는 헌법재판소가 정해준 입법개선 시한이 지났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것도 5년이나.
딱히 답하기가 멋쩍어 “검찰개혁 해야죠” 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체념인지 수긍인지는 애매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지규범도, 허용규범도 없는 무법상태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오직 당사자의 가치관에 달렸다고 밖에 볼 수 없겠습니다(사람의 시기에 관하여 진통설을 취하는 대법원 1982. 10. 12. 선고 81도2621 판결의 객체는 태아가 아님).
울산지방법원 사법접근센터 민원상담관 이성진법무사